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희비가 엇갈리는 감정의 대합실.
나홀로 시간을 보장하는 만만한 독방.
오피스의 여자 화장실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삶의 여섯가지 장면을 스크랩합니다.


변신

아침 8시30분, 여자들이 화장실에 모인다. 주머니 하나씩 든 모습.
부은 눈두덩에 푸른 아이새도를 바르고 립스틱을 문지르며 비로소 생기를 얻는 그들.
바쁜 출근 시간, 일단 출근 도장을 찍고 화장실에서 느긋하게 화장에 몰두하는 노하우를 남자들은 알까?
"지하철 화장실은 드나들기 좋고 옷 보관함이 있어서 최고다. "
화장품과 옷가지로 채워진 책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한무리 여고생들.
그들이 화장실에서 이른바 성인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은 무심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출처 모호한 화장실 백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패스트 푸드점 화장실 전용 고객이다.
백화점 화장실이라면 로열급.
학교 화장실은 '볼일용'에 머문다.
수시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깔끔 떠는 우아한 그들 덕분에 저녁 미팅이나 데이트가 시작되는 오후 6시 무렵, 화장실은 몸살을 앓는다.

독방의 흡연

남자의 푸른 연기가 멋이라면 여자의 담배는 아직도 비좁은 화장실을 어지럽게 맴도는 죄악이다.
금연 빌딩이 는다 해도 대개의 남성들이 흡연실의 아직은 여유로운 끽연을 지원받는 반면 여자의 담배는 비좁은 화장실 독방에서 엉거주춤 잦아든다.

여자의 흡연-
확산 일로의 이 래디컬한 문화는 그러나 이미 치기어린 반항이나 금기에 대한 호기심, 도발이 아니다.
즐거움 때문에, 니코친과 타르의 자극을 위해 빼무는 자기 위안일 뿐.
습관 때문에 사무실에서 금연하면 불안하고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화장실에서 맞담배하면서 잘 몰랐던 동료들과 친해지는 소득도 있다."
박**씨의 증언이 아니라도 화장실은 이제 흡연 장소다.
가끔씩 목청 높은 청소부 아주머니가 떨어진 담뱃재와 꽁초에 짜증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른 새벽이면 그들도 화장실 한 켠에 모여 앉아 고된 세상사와 함께 담배를 나눈다.

수다의 해방구

유니폼 입는 회사들의 여직원 전용 휴게실이라는 애매한 '복지시설' 외에 여자들 고유의 정서적인 속성
수다를 즐길만한 장소란 화장실 뿐이다.
자판기 옆에서, 바깥 벤치에서 본격적으로 떠들기란 대외적으로 '나 지금 노는 중'임을 알리는 일.
당연히 화장실로 숨어든다.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무방한 해방구다.
"잡다한 얘기들 나누며 스트레스 푸는 것 뿐이다. 사무실은 엄연히 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눈치 보인다. 사소한 작은 관심사를 나누기엔 화장실이 최고다."
지난 3월 은행에 입사한 신참 고**씨에 의하면 옷이나 화장이나 연예인 얘기들이 화장실 수다의 목록이며
요즘엔 연예인 ***가 아깝다, ***이 여우다..가 여론의 핵심이다.
한가지 중요한 에티켓은 선배 언니들이 들어오면 바로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사실.
만인이 평등할 것 같은 화장실에도 서열은 엄연히! 용변 볼 때도 서열이 적용되는 건 아닐까?

 

그녀의 꿈

화장실 예찬족에게는 나름의 수면 자세가 있다.
변기 뚜껑에 앉아서 물통끼고 자는 이 놀라운 노하우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단 30분이라도 맘 편히 잠잘수 있는 장소. 조용하고 아늑하고 다소 어두운 공간.
영업소에 근무하는 정***씨.
사방 모두 유리인 전시장이 사무실이라 늘 긴장되는 근무 환경에 남자 영업 사원들 속에서 홀로 버티며 맘껏 풀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 화장실을 애용한다.
단 20분이라도 혼자 조용히 눈 붙이고 나오면 오후 근무가 내내 순조롭다는 그녀의 귀띔. 화장실에서 그녀들은 어떤 꿈을 꿀까?

험담과 음모

화장실 험담은 신나는 오락. 상사, 동료, 선배 후배 누구나 망치 앞의 두더지가 된다.
***출판사 화장실 오늘의 주제는 선배 아무개의 스커트 뒷자락이다.
디자인부 조***씨 앞에서 호호거리다 자기 구두 뒤축에 스커트 끝자락을 부욱 튿는 현장을 봤어야 한다며 배를 움켜쥐는 조***씨는 오자 많이 낸다고 선배에게 찍힌 아웃사이더.
하지만 그 시간, 애써 구한 바늘쌈지를 들고 변기 뚜껑에 앉아 스커트 단을 꿰매는 선배 최***씨는 당장 박차고 나가 혼을 빼줄까, 아니면 내친김에 다른 직원들 반응까지 알아볼까 갈등 중이다.

"화장실에 10분만 앉아 있으면 사내 소문은 금방 접수된다.
정보의 하수도로 화장실만큼 리얼한 현장은 없다"
세면대 앞의 장황한 잡담은 때로 난처한 상황을 만든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적어도 10분 이상 꼼짝없이 화장실 안에 갇히는 운명.
주고 받은 얘기를 들은 터라 뒤늦게 못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숨죽이는 귀가 화장실 문 안에 있다.
그리고 소문은 날개를 단다.

눈물 속에 피는 꽃

눈물이 여자의 무기로 인정받는다 해도 직장에서의 눈물은 감추고 싶은 약점이다.
비이성적인 사고와 무능력을 내보일 심산이 아니라면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감춰야 한다.

그럴 때 여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 화장실.
화장실 세면대에 수돗물을 세게 틀어놓고 세수하며 우는 것이 제일 낫다.
잘못 표시 나면 온갓 소문에 시달리게 된다. 상사가 사소한 일로 책망할 때면 억울해서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약해지기 싫다.갈 곳은 화장실 뿐이다
하지만 꾸중과 시집살이의 뒤풀이로 벌건 눈두덩을 추스리며 화장실을 나서는 모습은 그래도 남몰래 흔적을 지우고 당당함을 유지하고자 했다는 훈장이다.
화장실은 역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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